home : dogsoul :: Seo Tai Ji
 

 

 

 

 


01. Maya
02. Take One
03. Take Two
04. Radio
05. Take Three
06. Take Four
07. LORD
08. Take Five
09. Take Six

 

 

 

 

서태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할말이 많다. 하지만 서태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한다는 것(특히 비판!이라면)은 폭탄을 등에 지고 적진 한가운데에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여지껏 서태지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나름의 기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문화잡지 기자나 평론가라는 허울을 가진 사람들)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닌 일반인(나같은 쌈마이 비관론자)이 떠드는 것은 (특히 통신상에) 거의 욕을 듣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전의 서태지의 표절 시비니 뭐니 이런 것들은 서태지라는 네임밸류에 가려, 그 진의에 대한 평가보다는 '서태지니까 그럴 리 없다' 라는 식, 또는 분위기만 비슷한 거다(하지만 이것도 엄연한 이미지 표절이다) 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왜냐면 그는 음반 사전심의를 반대한 90년대의 음악투사(?)이기에.. (원조 투사 정태춘이 끝물에 뛰어든 초보 투사 서태지에게 거의 모든 명예를 빼앗긴 것은 서태지의 네임밸류 때문이다. 또는 대부분의 서태지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는 정태춘팬들의 숫적인 열세이겠지...)

이번 서태지 독집은 그래.. 한마디로 얼터너티브 락이다. 테크노 천국 유럽이 아닌 미국에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다행히 서태지는 세기말의 음악이라는 테크노를 비껴갔다. 얼마전에 테크노의 승부사(?)를 표방했던 신해철이 받았던 그 많은 비판을 생각해보면 탁월한 선택이다. 하지만 얼터너티브라.. 그저 얼터너티브라기엔 뭔가 부족하다.

앨범을 잘 들어보자.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해낸 것과 곡 구성을 보면 서태지는 결코 '서태지와 아이들' 때의 초기 앨범들에서 보여주었던 테크노를 버리지 못했다. 오히려 Prodigy 류의 하드한 테크노 성향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반적으로 나타난 성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엄한 오해 없으면 좋겠다). 앨범 전체에서 다른 악기(특히 서태지의 원래 포지션인 베이스기타)에 비해 기타가 유난히 크고 분명하게 들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반적인 곡들에서 보여지는 것은 컴퓨터에서 시작되어 얼마전까지의 문학계에서 유행한 Cut and Paste 기법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4번째 곡 Radio를 들어보면 테크노에서 많이 쓰이는 '괜찮은 기타 리프를 모아둔 샘플 CD'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이 앨범에서 제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Take'는 MIDI Sequencing Program인 'Cakewalk'를 사용해본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친숙한 단어로 대충 '녹음'이나 '시도'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시퀀싱 프로그램에 연주를 녹음하고나면 디폴트로 붙는 이름이 Take 1, Take 2 등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이런 점에 미루어 볼 때 이 앨범은 '여러번의 시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시간 날 때마다 생각나는 아이디어들을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 모아두고 나중에 어울리는 아이디어들을 이어서 하나의 완성된 곡으로 종합하는 것이다. 물론 미디 시퀸싱 프로그램을 사용했다고 테크노는 아니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이 앨범의 모든 작업(프로듀싱, 녹음, 작사, 작곡, 연주 등등)을 혼자서 했다는 점과, 지금까지 언급한 예들을 살펴보면 이 앨범이 테크노적 성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기존의 다른 이런 저런 곡들에서 각종 아이디어를 따와서 하나의 곡으로 완성시킨 것을 볼 때, 서태지의 음악적 데이터베이스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태지는 여러 음악적 아이디어들을 단지 하나의 곡으로 조합한 것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전부 적재적소에 밀접하게 엮어놓았다. 한 가지라도 빠지게 되면 곡 전체가 무너질 정도로 자리를 확실히 잡아 놓았다. 일종의 완벽주의자 내지는 결벽증 환자처럼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제거할 곳에서는 확실히 제거하고 넣을 곳에서는 확실하게 넣어서 상당히 경제적으로 사운드를 만들었다. 어쩌면 멜로디보다는 사운드에 더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곡들에서 서태지는 자신의 보이스를 변조시켰다(심지어 앨범 쟈켓까지 우울한(?) 색조화장으로 변조시켜 버렸다). 서태지 자신도 서태지의 부드러운 미성과 얼터너티브 락이 매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목소리를 변조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서태지의 목소리 톤 자체가 너무 부드럽기 때문이다. 앞으로 뻗어주는 힘이 실린 목소리도 아니고,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목소리도 아니기에 그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목소리에 이펙터를 걸어 음악과의 분위기를 맞추는 일이었을 것이다. (뭐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 4집에서의 샤우팅과 래핑도 일종의 목소리 변조라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원래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4집에서 시도했으니 말이다.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 3집< 교실이데아>에서 크래쉬의 안흥찬을 기용한 것은 자신이 소화하기에 힘든 부분이었고 그 선택은 그만큼 효과가 있었다.) 아무튼 이번 독집 앨범에서 목소리에 이펙터를 걸어 변조시킨 것은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잘 맞는다. 특히 연주에 비해 보컬을 약간 작게 믹스해 그다지 튀게 들리지도 않는다.

이번 서태지의 독집은 미국적 얼터너티브 락과 유럽 테크노의 7대 3의 배합(물론 내 주관적 예상에 의한 배합이니 배합량에 불만이 있다면 직접 배합하기 바란다)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28분 가량의 짧은 러닝 타임과 수록곡들의 질을 보면 서태지이기에 수많은 사회적 반응과 함께 이런 앨범이 용납되는 것이다. 서태지라는 네임밸류를 빼고 본다면 90점 정도의 앨범이지만, 서태지의 네임밸류를 감안한다면 80점 정도의 앨범으로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이 놈의 나라 음악판에서의 서태지의 영향력과 그에 대한 믿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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痴?않으려는 듯 베이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