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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멋을 지닌 오석준

이 인터뷰는 2001년 6월 20일 오후에 오석준의 작업실에서 가진 인터뷰로, 음향 전문 잡지 Sound Art 2001년 8월호에 실린 Artist My Room이라는 기사의 원문입니다. 현장감과 사실적 의미 전달을 위해 가능한한 구어체(口語體)를 그대로 표기하였습니다

1989년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이라는 단아하고 아기자기한 곡이 담긴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활동을 시작한 오석준. 폭발적인 인기보다는 꾸준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오석준은 현재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활동을 하고 있다. 통통한 몸에서 느껴지는 포근하고 편안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오석준과 내면적 충실함을 추구하는 그의 음악세계를 얘기해 보았다.

- 처음으로 작곡을 하다..

음악이 좋아서 한 게 계기죠. 중학교, 국민학교 때부터 뭔가를 했었어요. 뭔가가 제대로 된 건 아니었고. 그냥 기타나 피아노를 쳤죠. 그때는 주로 기타를 많이 쳤어요. 작곡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했어요. 작곡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짝사랑 하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냥 편지만 쓰기 뭐해서 편지에다가 곡을 쓴 게 첫 작품이었어요. 결국 녹음까지 해놓고 못보냈어요. 중학교 때는 계속 그룹을 했었어요. 스쿨 밴드를 만들어서 중학교 3학년 때, 공연도 했었고, 고등학교에서도 그룹을 하고, 대학교 때도 했는데, 그룹을 하면서 사실 음악을 업으로 해야 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 우연한 계기를 통한 1집

그러다가 정말 우연한 계기에 음악을 하게 됐죠. 제 친구가 있었는데 자기가 앨범을 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곡을 좀 달라고 부탁을 하길래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피아노로 곡을 만들어서 4곡을 줬어요. 이 친구가 그 당시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친구한테 곡을 받았으니까 가수 된다는 생각에 그걸 카페에 틀었는데, 그 상황에 어떤 기획자가 카페안에 있었고, 그 사람이 그걸 듣고 저를 픽업했어요. 그렇게 되서 88년도에 녹음을 시작했어요. 1집이죠. 사실 그때가 언제였냐면 제가 방위 훈련 들어가기 딱 한달 전이었는데, 사실은 1집을 발표하면서 TV 활동을 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군복무 때문에 못했던 게 컸어요. 그런데 거꾸로 저한테는 도움이 많이 됐죠.

- 일본 유학과 음악활동의 병행

89년 2월에 1집 나오고요. <내일이 찾아오면>으로 활동을 했던 '오장박'은 "굿모닝 대통령"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음악을 하면서 결성하게 됐죠. 그리고 제가 90년도 3월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거든요. 그 전부터 원래 집에서 음악 하는 걸 탐탁치 않게 생각을 했었죠. 아버지가 일본에 계셨거든요. 그래서 그때까지만 음악을 하고 일본에 와서 공부하라는, 약간의 조건부로 음악을 했었죠. 일본에는 90년 3월에 갔는데 90년 2월에 2집이 나오고, 공연을 하고 바로 일본으로 갔어요. 일본 가서 한 2년 조용히 있다가 93년도에 3집을 냈죠. 거기에 <웃어요>라는 곡이 있었고, 94년도에 앨범 하나 더 냈었고요. 95년도에 일본에서 졸업하고 오자마자 5집을 냈었고요. 그때 5집을 내면서 회사를 하나 만들었었는데 "예우"라는 회사를 만들었었어요. 박정운씨와 같이 회사를 했는데, 그때 [준and준]이라고 듀엣 앨범도 하나 만들었었고, 공연도 같이 했었어요.

- 드라마 음악 작업

그러고 있다가 회사가 망하고, 제가 앨범을 내러 LG 미디어라는 회사를 갔었어요. 우연히 판을 내러 갔다가 얘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서 그 회사에 대리로 입사를 하게 됐었어요. 들어가서 했던 일이 KBS 드라마 음악 1년치 일을 기획했었거든요. 그때 제일 처음 했던 일이 "Color"라는 드라마 음악을 했었어요.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제가 다 했죠. 그 다음부터 나오는 "첫사랑", "머나먼 나라" 등의 드라마 음악을 하면서 1년하고도 2~3개월 정도 LG 미디어를 다니다가, 다시 제 음반을 내려고 하니깐 좀 이상하고 나이도 많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때 생각했던 게 "남한테 곡을 주자"라는 거였어요.

- 본격적인 작곡가로서

저는 제 앨범을 내면서 남한테 곡을 준 경험이 거의 없어요. 많이 줘봐야 2-3곡 줬는데.. 그래서 아예 작곡가로 나서자라는 생각을 하고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죠. 그때 처음 만났던 가수가 리아였어요. 리아 2집 때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했고, 그때 만났던 친구가 손무현이었어요. 물론 그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같이 작업할 기회가 없었죠. 그렇게 본격적인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하고 98년에 리아 3집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히트하면서, 그 다음에 박기영 앨범 작업을 했었고, 그 다음에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앨범에 참여했었고, 안재욱의 < Baddest>라는 노래... 그러다가 작년인 2000년에는 외부 작업을 좀 쉬면서 제 앨범을 낼려고 하다가 더 바쁜 일들이 많이 생겨서 앨범을 못냈어요. 작년에 프로듀서 했던 게 강현수 2집을 프로듀스 했었죠. 그리고 어떻게 흘러 흘러 손무현이라는 친구와 EO Enter 일을 같이 하게 됐죠.

-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강현수 2집

작년에 했던 강현수 2집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죠. 강현수라는 친구를 1집 때부터 주목하면서 저 친구한테 무엇인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처음에는 작사 부탁이 들어와서 가사를 써줬는데 나중에 매니저가 와서 곡을 달라고 하더라구요. 갑자기 매니저가 와서 이번 컨셉이 하드코어니까 하드코어를 써달라고 해서, 당신 미치지 않았냐고.. 나는 그런 거 잘 못한다고 했었어요. 그렇게 해서 그 작업이 굉장히 어려웠고 기억에 가장 많이 남죠. 제가 해오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편곡도 신경을 많이 썼었고, 녹음도 신경을 많이 써서 했어요. 여지껏 편곡을 하면서 트랙을 많이 써본 적이 없는데, 그 앨범에는 거의 80트랙 이상을 사용했어요. 그래서 일단은 정신이 없었고. 믹싱도 서너번 넘게 했고, 노래도 여러 번 불렀고.. <쿠테타>라는 곡은 저한테 의미심장한 곡이었어요. 힘들었지만, 하면서 재미도 있었고, 안해보던 걸 해서 자신감도 생기고 그러더라고요.

- 일본 유학은 음악 유학?

아뇨. 디자인을 했어요. 고베예술 공과대학이라고, 처음엔 그래픽 디자인을 하려고 했는데 공부하다가 결국은 아트 퍼포먼스로 졸업을 했어요. 쉽게 얘기하면 백남준 씨 비디오 아트나 그런 쪽으로 이해하시면 될거예요. 그런데 음악하고는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전공이지만 의외로 관련이 많아요. 예를 들어 공간 음향이라든지. 이런 거에 관한 것들을 많이 했어요.

- 초기의 서정적인 분위기로 굳어진 이미지에 대한 부담

부담이 많이 됐죠. 저는 싱어송라이터로 시작을 했는데, 사실 싱어송라이터가 변신을 하기는 정말 어려워요. 음악적으로 변신을 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노래에도 변신이 되야 하거든요. 그런데 노래 부르는 사람이 만드는 노래라는 건 자기 노래를 편하게 만드는 음악이거든요. 그래서 자기밖에 못부른다고 생각하고 앨범을 내는 거고.. 제가 그래서 5집까지 앨범을 내보니깐 이제 더 이상은 할 게 없드라고요. 할 게 없다는 거 보다는 여기서 변신을 하려면 음악적으로 더 변신을 하든지, 아니면 상업적으로 돌아서든지 딱 두갈래길에 섰었어요.

아무래도 음악을 계속 하면서 히트가 안나면 사람이 지치잖아요.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LG 미디어에 들어가게 되면서, 옛날보다는 앨범을 내거나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미련이 많이 없어졌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면서 선언을 한 게 작곡가를 해야겠다였거든요. 그렇게 한 이유는 작곡가라는 건 가수에 맞춰서 곡을 써줘야 하고, 그 사람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거를 만들어야 하고, 자기가 음악을 하는 것보다 훨씬 여러 장르를 할 수 있으니까 거기에 메리트를 뒀죠. 대리 만족이라는 게 더 좋더라고요. 활동 영역도 더 넓어졌다고 보고요.

그런데 참 그것도 웃기는 얘기 중 하난데.. 작곡가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특이해요. 외국 같은 경우는 어떤 스타일의 노래.. 예를 들면 데이빗 포스터하면 데이빗 포스터 스타일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만능으로 다 잘해야 하니깐.. 그 자체가 제가 생각하기에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떤 작곡가한테 가면 꼭 그런 스타일의 노래가 나와야 한다라는 자기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작곡가들은 저 뿐만이 아니라 다 그렇지 못하거든요. 또 그렇게 안하면 자연히 도태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던 작곡가는 모든 음악을 다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제가 계속 히트곡을 내면서도 계속 같은 스타일의 히트곡은 없었어요. 계속 변신을 하려고 했었죠. 지금도 약간 그런 생각이 있고요. 조금 전에 한 얘기와는 어폐가 있는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작곡가가 여러가지 스타일의 음악을 못하면서 상황을 욕하는 거 보다는 할 줄 알면서 욕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 예전에 작은 미니 키보드 들고 다니면서 작업을 했다고 하던데 지금도 애용을 하는지?

지금은 안하죠. (웃음) 그래도 그 악기들 다 있어요. 카시오에서 나온 건반처럼 생긴 게 있는데 소리가 무척 좋아요. 저는 그걸 가지고 1집 데모를 다 만들었거든요. 이제는 샘플러도 많고 하니깐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런 소리들을 샘플러로 떠서 다시 이용할 수도 있는 거고.. 사실은 지금 와서 생각하는데 악기에 대해서 너무 욕심을 부리다 보면 작곡을 하거나 음악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걸 놓치게 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요즘 작업하는 패턴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제가 작곡 작사 편곡까지 다 하고 했는데, 이제는 저는 곡 쓰는 데 더 치중을 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작업실에는 여러가지 소리가 필요없어요. 오히려 똑같은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상황이 곡쓰는 저한테는 더 편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작업실에서는 어느 정도의 곡을 써놓고, 편곡은 또 새로운 마음으로 이곳 작업실에 와서 또 하는 패턴이죠.

그리고 예전에는 어떤 기계든 내가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모르면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건 없어요. 좋은 악기나 편한 악기들은 얼마든지 있고, 그런 악기들을 저보다 휠씬 더 잘 다룰 수 있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이제는 더 세분화되고 분업화되고 있으니까 저는 진두지휘만 하는 거예요. 그것도 굉장히 좋은 방법이거든요. 제가 3집, 4집을 낼 때만 해도 컴퓨터 미디에 흥미가 많았는데, 5집 때부터 그리고 그 이후에 제가 작곡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어느정도 절충해서 쓰고 있어요. 너무 프로그래밍해서 하는 것도 단점이 있어서 요즘은 어쿠스틱을 지향하는 편이예요.

- 애용하는 장비에 대해서

샘플러를 처음 쓴 게 91년도거든요. 그때 처음 샀는데, 그때 샀던 악기가 Ensoniq이예요. 저는 일본에 있었지만 미국 악기에 훨씬 매력을 많이 느꼈거든요. 전반적으로 소리의 선도 굵고 댐핑도 좋아요. 그래서 그때 산 샘플러가 EPS-16 Plus예요. 그 악기는 지금도 잘 쓰거든요. Mono에 16비트인데도 불구하고 필터가 굉장히 좋아요. 그 필터를 자유자재로 잘 이용하고 있고, 모노인데 그 안에 있는 이펙트 때문에 언뜻 스테레오로 들릴 수도 있고.. 그거 하고 ASR-10을 같이 쓰는데 아무래도 ASR-10보다 EPS-16이 훨씬 좋아요 (웃음). 그거는 처음 사용했던 샘플러라 제가 좀 집착하는 면도 있지만, 뭐 아카펠라 한다고 이런 저런 시도도 하면서 정말 별 거 다 했어요. 그 다음에 애용하는 건 오버햄 익스펜더라고 있거든요. 그건 일본에서 굉장히 싸게 샀는데, 그 악기도 정말 좋아요. 빈티지성 악기는 전반적으로 다 좋아하는데, 오버햄 익스펜터는 어디다가 써도 쉽게 쓸 수 있고 에디팅도 굉장히 용이하더라고요.

- 사용중인 시퀀서에 대해서

제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 맨 처음에 샀던 키보드가 T2였었어요. 그 당시는 맥킨토시가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엄두가 안나서 MC-500으로 작업을 하면서 맥킨토시를 살까 말까 하다가, 당분간 기다리자라는 생각으로 T2 안에 있는 시퀀서로 작업을 했었는데, 그것도 작업을 잘 하면 꽤 좋아요. 그러다가 결국 상당히 고가로 맥킨토시를 구입한 후에 키보드 매거진 같은 걸 보면서 퍼포머(Performer)하고 비전(Vision) 중에서 어떤 놈을 선택할까 하고 고민을 무지하게 하다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어떤 기사에서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퍼포머는 연주가 용이한 사람들이 쓰기엔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이고, 연주가 좀 안되거나 에디팅이 많이 필요한 사람들은 비전을 써라라는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비전이다'라고 결정을 하고 비전을 썼죠.

이후에 계속 업그레이드는 했는데, 사실상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거는 친구한테 싸게 산 굉장히 오래된 맥킨토시 흑백 노트북이예요. 정말 후진 거라 프로그램 버전이 높이 올라가면 안돌아가요. 그래서 다른 건 다 지워버리고 거기에 비전 1.43만 깔려 있어요. 그거는 정말 기본적인 시퀀서밖에 안되는 건데 대신에 다운이 안되요. 지금 집에서 작업을 할 때는 맥킨토시 노트북에 비전 1.43에 Studio 3 인터페이스, 그리고 작곡을 할 때는 악기가 많이 필요없기 때문에 악기는 JV-1080으로 작업을 해요,

옛날에 한창 미디에 미쳐 있을 때 악기를 너무 많이 샀었는데, 어느정도 지나면서 악기를 줄이니까 다른 거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도 되더라고요. 그래서 작업실을 최대한 컴팩트화를 하려고 하고 있거든요. 작곡을 위한 악기는 기본적으로 건반이랑 모듈 하나 정도만 있으면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굳이 샘플러를 쓰는 이유중의 하나는 샘플러로 루프나 이런 기본 리듬들을 따자는 게 아니라 곡에 느낌을 주기 위해서 필터 처리하고 이런 거 때문에 이펙트적인 효과로 샘플러를 사용하고 있죠. 샘플러가 주가 되지는 않아요.

- 즐겨듣는 음악

Ben Folds Five라는 그룹을 굉장히 좋아해요. 기본적으로는 록을 좋아하는데, 완전히 록을 좋아하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고, 어느정도 퓨전적인 냄새가 있어야 하고,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 주는 그런 음악을 좋아해요. 대체적인 특성을 보면 밴드 형태의 록보다는 개인 솔로나 색다른 악기 편성의 록하는 사람들.. 그런 면에서 영국음악을 선호해요. Van Halen 같은 음악은 저하고 안맞아서 싫어해요. 미국적인 감성은 좀 없고 영국적인 감성이 저랑 맞죠. 그래서 영국 음악 많이 듣고 있고, 요즘은 로비 윌리암스 같은 음악이 저하고 딱 맞는 거 같아요. 한때는 테크노도 좋아했었고, 지금도 계속 연구중이죠.

- 활동하면서 느끼시는 국내 음악계에 대한 생각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 음악할 때도 "너가 가수냐?" 하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어디까지나 세대간에 오는 그런 과도기적인 마찰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죠. 그런데 걱정은 되는 건 있어요. 음악이 근본이 없이 너무 많이 흔들려져 있고, 한 장르가 이렇게까지 기존의 음악을 다 없앨 수 있느냐 하는 의문도 있어요. 사실상 그렇게 되고 있지만, 가수는 노래를 잘 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어요. 그리고 작곡을 하는 사람은 작곡을 잘 해야 되고..

그런데 굉장히 단순한 예들이 많이 깨지고 있잖아요. 물론 뭐 악기나 기계들이 좋아져서 누구나 가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사실은 가수가 노래를 잘 한다는 건 모든 게 내포가 되있거든요. 노래도 잘해야 하지만 타고난 끼도 있어야 하는 거고, 이런 것들이 어느정도 밸런스가 맞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죠. 앞으로 제가 보기에는 이 추세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듯 해요. 주류가 그만큼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또한 음악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 제가 그걸 따라가는 것도 우습죠. 하지만 말씀드렸다 시피 대중음악 작곡가라면 거기에 편승을 하면서 자기가 할 줄 알고, 그리고 나서 나중에 판단을 해야지, "저건 음악이 아니야"라고 얘기하면, 자기는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거니깐, 그 자체가 실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큰일났다" 이런 생각도 가끔 하지만, 그래도 가수는 계속 나오고 판도 계속 나오거든요. 사실 예술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게 대중음악이라고 생각을 해요. 어떤 법칙은 있었지만, 그런 게 다 깨지는 상황이고, 그래도 긺성漫 어떻게 마케팅까지 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많이 공부했었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프로듀서를 하면서 제작사와 제 생각이 똑같이 맞아서 같이 해야 겠다는 건 없었어요. 그런데 작년에 제가 우연히 같이 일하게 된 회사가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1년동안 애들 찾아다니면서 남자 두명과 여자 한명을 뽑았어요. 아마 올해 9월이나 10월에 앨범이 나올 건데, 지금 그 앨범을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죠.

팀 이름은 아직 확정은 안됐고요.. 3인조 그룹 형태이고, 메인 보컬은 여자고 여자는 일단 노래를 잘 하고 모델 출신이라 CF에도 많이 나왔었어요. 그리고 기타치는 친구와 피아노 치는 친구가 있어요. 저는 그 친구들이 아무리 뒤에서 기타를 치건 뭐를 하건간에 절대로 폼 잡을려고 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1년동안 기타와 피아노를 가르쳤어요, 그리고 연주하는 친구들도 노래를 잘 해요. 그래서 이 팀의 오디션에서부터 스타일리스트, 앨범 프로듀스까지 전체적인 부분을 모두 담당하고 있어요. 기존의 프로듀서 개념하고는 많이 다르죠. 심지어 어떻게 판매하고 홍보하느냐까지 관여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작업외에 영화음악 "미워도 다시한번 2000"이라는 예전 영화 리메이크의 음악과 올해 아마 강현수 3집을 손무현과 같이 공동프로듀서로 할 꺼 같아요.

- 영화음악 작업을 의외로 많이 했는데..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업이예요. 일단 제가 영화를 좋아하고요. 영화음악에 대해서는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그냥 가수한테 곡을 줄 때하고는 개념이 다르거든요. 화면에 맞고 줄거리에 맞게 음악을 만든다는 게 굉장히 재미있고 그거는 관심도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하려구요. "신라의 달밤" 같은 경우도 손무현씨가 했는데.. 저도 기획을 같이 했고..

- 영화음악 작업에서 어려운 점..

자금이 별로 없는 거! (웃음) 우리나라 영화계는 너무 다른 쪽에 치중을 많이 하니까... 그래서 여태까지 나왔던 영화음악을 보면 주제가 몇곡 있고, 나머지는 다 누구 테마, 누구 테마 이건데.. 그런 식으로 앨범 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거든요. 물론 그렇게 해서도 OST가 되는데, 문제는 퀄리티의 문제죠. 그렇게 연주곡이 많이 들어갈 것 같으면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든지 그러는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겠지만, 요즘의 세계적인 추세로 봤을 때 OST 개념이 영화 안에 있는 음악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미지송 개념이 많잖아요. 차라리 그런 식의 형태가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주유소 습격사건"이나 "신라의 달밤"이 약간은 그런 패턴으로 가는 형식이었죠. OST를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팔기 위해 그렇게 하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요. 뭐 영화안에 들어가는 오리지널 스코어는 스코어대로 열심히 하면 되는 거고요.. 저는 사실은 스코어쪽에 관심이 많아요. 주제가는 좀 그렇고, 스코어는 정말로 여건이 된다면 돈 많이 들여서 잘 하고 싶죠,

사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조차도 어떤 개념이 없어요. 서라운드에 대한 개념도 없고, 그냥 대사가 잘 들려야 된다는 얘기 밖에 안하기 때문에.. 그런 얘기 들으면 뭐 음악 잘 만들려고 했다가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요. 그러니깐 많은 설득이 필요하죠. 또 일정도 며칠 없어요. 며칠 사이에 다 해오라고 하니깐.. (웃음)

- 오석준의 음악 색깔이라 한다면?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일단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색깔이라는 건 너무 추상적이고.. 음.. 아주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인 표현의 음악을 좋아하고, 또 하고 싶어요. 아기자기한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음악을 들었을 때 감동이 막 밀려오거나 그런 곡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은 너무 잘 정리정돈되어 있어서 조금은 복잡하다고 생각될만한 그런 스타일의 음악이예요.

- 디지털 장비의 발전에 따라 작은 제작비로도 작업이 가능한 추세에 대해

저는 좋은 거 같아요. 예전에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어디서 녹음을 해서 판을 내기까지 들어가는 액수가 워낙 커서 엄두가 안났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시퀀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제부터 내 세상이다"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집에서 녹음도 할 수 있고 나 혼자 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했었죠. 사실 녹음실에서 정식으로 하면 사운드는 좋죠. 하지만 음악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음악을 점차적으로 하다 보니깐, 음악은 혼자하면 할수록 외로워지고 이상한 길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음악은 같이 하는 협동이라고 생각을 하게 됐죠.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시너지도 많고, 그것 때문에 어떤 녹음실을 빌려서 사람들을 불러서 같이 음악을 하고.. 물론 거기서 믹싱을 하는 거 보다 자기가 믹싱을 하는 게 더 좋죠. 근데 더 잘 할 수 있는 거, 그리고 좀더 여유를 갖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죠.

사실 집에서 앨범 낼라면 내죠.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정말 집에서 해서 잘못하면 욕 무지하게 먹거든요. (웃음) 그런 것도 있고해서 요즘의 추세는 좋지만 저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한다는 게 더 좋기 때문에 제가 직접 홈스튜디오에서 하는 건 별로예요. 하지만 예를 들어 신인이라든지 앨범을 발표안했던 사람이라든지.. 자기가 능력이 되고 장비도 다 있어서 뭔가 해보고 싶다든가 든지.. 인디밴드들.. 이럴 경우에는 홈스튜디오가 정말 좋죠.

- 앞으로의 진짜 어떤 음악인으로 남고 싶은지?

저는 음악인으로 남으면 영광이고요.. (웃음) 맨날 하는 얘기가 그거예요. 제가 조금만 각도가 빗나가서 일본에 태어났으면 좀 더 색다른 음악을 했었을거고 더 음악스럽게 하지 않았겠나 생각을 하는데.. 우리나라 상황에서 음악을 할 수 있는 한계는 있어요. 한계가 있다는 얘기는 예를 들어 자기가 10년을 작곡을 할 수 있으면, 배터리 수명이 다 할 때까지가 10년정도다. 저는 그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곡은 계속 쓸 수는 있지만, 히트곡이나 대중음악은 계속 할 수 없다는 게 제 지론이거든요. 왜냐면 그 대중들에 대한 포인트를 맞추면서 그걸 다 파악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인가 그 감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이제는 계속 그 자리이거나 뒤로 밀려난다는 생각을 하기 떄문에..

물론 음악을 놓지는 않죠. 놓지는 않지만, 앞으로 제가 해야될 일들은 어떤 프로듀서 개념 아니면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기획이나 이런 거에 메리트를 많이 두고 있고, 이오엔터에서 하는 것도 그런 쪽으로 하고 있어요. 사실 뭐 히트곡을 많이 내면 좋죠. 근데 예전보다, 그러니까 불과 2-3년 전보다도 히트곡에 대한 매력을 별로 못느껴요. 이건 제가 해볼만큼 해봤다는 그게 아니라 사실은 너무 벅찬 상황이 오더라고요. 제가 따라가기 힘든 상황도 오고.. 물론 열심히는 하는데 어느 순간에는 후배들한테 자리를 내줘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죠. 그래서 제가 아는 후배 친구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주고있고, 앞으로 저도 많은 도움을 받을 꺼고.. 그런 후배 양성을 하는 것도 큰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죠.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기본적으로 제 생각은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고 하면 그때부터는 음악을 듣고 즐길 수는 없거든요. 사실 아마추어나 자기가 음악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있을 때가 가장 음악을 듣고 느끼기 좋다고 생각해요. 아마 음악을 안하시는 아마추어나 이런 분들은 지금이 정말 기회거든요. 이때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하고 음악을 더 즐겨야 해요. 어느정도 음악을 하다보면 음악을 즐기는 방법조차 잊어먹어요. 저는 아무리 좋은 노래를 들어도 예전에 들었던 곡 만큼 못 느껴요. 올디스 벗 구디즈라는 얘기가 그거거든요. 향수라는 것 때문에 음악을 듣지만, 어떤 좋은 노래가 나왔을 때 그걸 분석을 하려고 하지 그걸 느끼려고 생각을 안하거든요.

제가 요즘 주로 듣는 음악도 예전에 듣던 음악들이거나 클래식 쪽을 많이 듣거든요. 벌써 저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거를 분석적으로 들어가서 이걸 어떻게 상업적으로 이용할까만 생각을 할 뿐이죠. 사실 요즘도 좋은 노래는 있거든요. 그러니까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을 하면 음악에 미쳐야 하고 많은 음악을 듣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지금 생각에는 요즘 사람들이 아는 음악은 제가 다 알아야 한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웬만한 음악은 다 알아요. 그건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는 거고, 결국은 음악에 대해서 음악을 많이 듣는 거 밖에 왕도는 없어요. 음악을 잘하고 못하고도 음악을 많이 듣고 난 이후에 자기 노력의 판가름이지, 음악을 모르고 혼자 열심히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물론 그렇게 해서 훌륭한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경험상 많은 음악을 듣는 거 이상은 좋은 건 없는 거 같아요, 많은 음악을 듣고 음악에 미치셔야죠. (웃음)

- 대중성과 음악성의 조화.

사실은 음악성을 따라가느냐 대중성을 따라가느냐에 대해서는 항상 생각하는 부분인데.. 작곡가로서 어떤 곡을 의뢰를 받거나 어떤 프로듀서로서 저한테 의뢰를 한 분들은 당연히 상업적이고 대중적이면서 잘 팔리는 노래를 원하죠. 어떤 제작자라도 음악성있는 음악을 주면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거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게 제 독집 앨범에서 희생을 하는 거죠.

사실은 작년에도 제 앨범을 내려다가 못낸 이유 중 하나가, 제 앨범을 할려고 하니깐 이게 어디로 가야할 지하는 고민에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가 결국 결론을 낸 게 다른 데서 안했던 음악을 내 앨범에서 하는 방법밖에 없더라고요. 예전에는 앨범을 낼 땐, 3-4개월에 뚝딱 만들고 그랬는데 이제는 더 이상 무책임하게 앨범을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낼려면 잘 내야 되는거죠. 그렇게 제꺼 할 때는 더 음악적으로 가고 뭐 그렇게 하고 있죠.

영화음악만 해도 제가 개인적으로 스코어에 더 관심이 있는 이유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좋아요. 그런데 어떤 게 우선이냐라고 하면 지금 제가 있는 상황이 대중작곡가이기 때문에 히트곡을 많이 내는 게 금전적으로나 생활이 안정되기 때문에 좋은 거고.. 또 사실 생활이 안정이 안되면 예술이고 뭐고 다 필요없어요. 그렇게 생각해요.

- 후배들에게 바라는 점

저는 후배들도 제가 온 전철을 똑같이 밟기를 원하거든요. 왜냐면 특히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자기가 노래를 해보고 앨범을 내보고 남한테 곡을 줘서 히트도 내보고 여러가지 음악을 다 해봐야 그 이후에 자기가 갈 길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목적 의식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제 밑에 있는 후배들.. 나름대로 다 5-6년씩 음악한 친구들이긴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 극단적으로까지 얘기를 해줘요. "우리나라에서는 뜨지 않으면 너 알아주는 사람 없고 너 하고 싶은 음악도 못하니깐, 히트할 수 있는 음악을 먼저 만들어라"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다 보면 자기가 다시 느끼거든요. 그걸 모르는 상황에서는 말로 설명해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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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라는 회사를 만들었었어요. 박정운씨와 같이 회사를 했는데, 그때 [준and준]이라고